31 May 잠시 생각해 보자
요사이 미국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보면 문을 닫는 단추가 없어져 가고 있다. 이상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럴 법한 일이다. 그 사람들은 승강기를 타로 내릴 때 문을 닫는 일이 없다. 자동으로 닫힐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며, 늦게 타러 오는 사람을 위해 열어 줄 필요는 있어도 내가 탔다고 문을 닫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닫는 단추가 있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20-30대의 젊은 층들은 자기만 타면 타기가 무섭게 문을 닫는다. 어떤 사람들은 자동으로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리거나 후에 탈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까 대기하는 사람을 이상스레 여긴다. ‘왜 안닫느냐?’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빌딩에 가보면 ‘4초만 참아 주세요!’라든지, ‘얼마의 전기를 절약합시다’는 글을 써 붙이기도 한다. 아예 문을 닫지 못하도록 장치를 해둔 곳도 있다. 왜 그런 생활의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이유는 두 가지이다. 우리는 자기를 위한 생각뿐이지 이웃과 더불어 생활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지 못하다. 더욱이 나보다도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거의 모른다. 택시는 손님을 모시기 위하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개의 기사들은 손님을 나의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고 만다. 승강기는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운용되고 있는 것임을 생각지 않는다. 둘째는 우리는 작은 일에 설칠 뿐이지 일과 생활의 여유가 없으며 더 중요한 목적을 상실하곤 한다. 눈앞의 한 가지만 생각하고 뒤따라 할 긴 인생이 결과를 헤아리지 않는다. 지금 당장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지 30-40대가 되었을 때 어떤 인간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 것인가는 염두에 두지 못한다. 그래서 세월이 지날수록 생의 낙오자가 되며, 큰 경륜에서 실패하는가 하면, 위대한 뜻과 소망스러운 인생의 결실을 얻지 못한다. 큰 지도자가 되지 못하며 많은 사람들의 협력과 후원을 얻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내 생각만 하며 성급하게 서두르는 배후에는 어떤 의식구조가 적용되고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창피스러운 이기주의적 사고 때문이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이기심을 경쟁적으로 키워 주는 부모들의 욕심과 잘못된 교육이 우리 사회를 점점 더 나쁘게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고쳐야 할 마음의 병과 사회악이 하나가 아닐 수 없다. – [김형석 교수, ‘젊은 날의 선택,’ 202쪽] – 정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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