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Jun 임윤찬 파이팅!
쇼팽,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고전적 피아노 연주는 가끔 듣지만, 라흐마니노프는 늘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금번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의 나이로 한국의 임윤찬 소년 [이제 18살]이 우승을 하였다. 우승 뿐만 아니라, 청중상, 현대곡을 가장 잘 연주한 이에게 돌아가는 “신작 최고 연주상”까지 삼 관왕이 되었다. 결승전 연주곡을 몇 번이나 들었는데, 40분이상 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으며 눈물이 난 것은 처음이었다. 라흐마니노프도 도전해 볼 만한 생각이 들었다. 우승과 더불어 내가 임윤찬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임윤찬 군은 순수 국내파라는 것이다. 그를 사사하고 있는 교수도 한국 예술 종합학교 손민수 교수이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지극히 자신의 뚜렷한 색깔로 해석하고, 화려하고 정교한 기교로 연주해 내었다. 외국의 힘을 받지도 않고 말이다. 임윤찬 군이 한 말이다. “난 산에 들어가 피아노만 치고 싶은 사람이다. 단지 그렇게 되면 수입이 없다. 커리에 대한 야망은 0.1%도 없고, 내년 성인이 되기 전에 내 음악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보기 위해 콩쿠르에 나왔다. 콩쿠르 우승과 상관없이 공부할 것이다.” [아, 얼마나 오리지널 한 생각인가?]
나는 임윤찬을 생각하며 우리의 믿음 생활, 조국의 신학 환경을 생각하여 보았다. 성경은 마치 라흐마니노프가 한국 사람이 아닌 것처럼, 한국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끝까지 서구의 방식을 따라 해석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민 초기, 마치 한국 교회를 우습게 여기며 미국인 교회 다니는 것이 무슨 유행인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었다. 한국 이민 교회는 싸우기만 하며 미국 교회는 마치 무슨 우월한 클래스의 교회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람 있는 데는 다르지 않다. 미국 교인, 한국 교인,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용서 받은 죄인들이다.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이다. 적어도 42년의 미국 이민 생활에서 내리는 결론이다. 믿음 생활이란 남의 눈으로 본 예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눈, 내 문화의 눈으로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다가오는 복음의 메시지를 내 삶을 가져가는 것, 내가 만난 예수를 전하는 주체적 신앙이다. 미국에서 유럽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서구 신학에 함몰된 한국 신학계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문화도, 기술도 모방[이미테이숑]의 단계를 거쳐 오리지널 해석, 창조의 단계로 간다. 지속적으로 모방의 단계의 머물며 돈은 많이 벌 수 있지만, 자기 가치의 진정함은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임윤찬을 보며, “아, 이제 우리 조국 대한민국도 모방의 단계를 거쳐, 예술 또한 해석의 창조적인 단계로 갈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신앙도, 누구 따라가는 신앙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 한 분 따라가며 하나님의 말씀도 이제 내 사람에 주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단계로 나가야 한다. 한국의 신학도, 이제 이민 교회의 상황도 서구의 신학에, 다른 미국 교회들에게 주눅들 필요 없다. 서구적 방법이 아니라, 지극히 한국적인 것으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 아니,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 신선한 자극으로 다시 한번 믿음과 신학을 다시 생각하게 한 임윤찬 우승 소식이다. 다시 한번 임윤찬 화이팅이다. – 정대성
Sorry, the comment form is closed at this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