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Mar 기대감
최근 인터넷 조선일보에, 하바드 대학교를 2년 만에 중퇴하였지만 바로 그 대학의 졸업식 연사로 초대 받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윈도우’ 라는 프로그램으로 퍼스널 컴퓨터의 혁명을 이루어내었던 빌 게이츠 또한 하버드 대학교를 2년 다니다 중퇴하였지만, 2007년 졸업식 연사로 초대 되었고, 그 자리에서 명예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일보에 “태평로”라는 칼럼을 연재하는 한현우 주말 뉴스 부장은 이와 관련된 칼럼을 쓰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거는 왜 2년만 더 다니면 딸 수 있었던 ‘하버드 졸업장’을 포기했을까?” 그리고 이런 깊이 있는 답을 주었다. “그들에게 대학은 자신의 진로를 찾는 곳이었을 뿐, 진로를 보장해주는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로를 찾은 그들에게 학위는 종이쪽지였을 따름이다.” [조선일보, 태평로, 2017년 3월 10일자]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 대학교는 진로를 찾는 곳이지, 진로를 보장해주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은 대학이 진로를 보장해주는 곳으로 여겨져, 대학교 들어가는데 그토록 많은 힘과 에너지를 소비하는데, 정작 대학에 가서는 공부를 중단하거나, 혹은 자신의 진로를 찾는 일을 등한시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대학을 미래의 진로를 찾는 곳으로 여길 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발전과 성숙을 향한 추구로 도구가 되어 대학 생활은 참으로 흥미진진 할 것 같다. 하지만, 대학이 미래의 보장이 되면 대학 그 자체는 배움의 도구가 아닌 필요악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이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교회를 구원을 보장 받는 곳으로 여기었다. 그래서 교회의 멤버가 되면 천국은 따논 당상처럼 여긴 것이다. 그래서, 태어나서 유아세례 받으며 한 번, 결혼 하며 한 번, 죽어서 장례식을 하기 위하여 교회를 세번 가면서도 자신은 마치 교회에 속하였기에 구원 받은 것으로 오해하였다. 하지만, 교회는 구원의 보장이 아니라, 구원을 살아내는 도전의 장이다. 그래서 교회를 통하여 안전을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할 때도 도전할 수 있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도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사랑하는 가운데 인격적 성장, 영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런 도전적 교회 생활을 통하여 신앙의 큰 성숙을 이루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하여 본다.
Sorry, the comment form is closed at this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