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Sep 나무 치기
티켓을 먹었다. 오로라 시에서 나와, 집 길가에 자라고 있는 나무가 도로를 점령했기 때문에 자르라는 티켓이었다. 그래서 또 나무 이야기를 한 번 더 할 참이다. 우리 집 앞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한 그루 떡하니 서있다. 그 소나무를 보며, 마음 속으로, “저 나무 귀찮기만 한데 이번 기회에 잘라버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미관상 아무 쓸 짝이 없어 보였을 뿐 아니라, 겨울에 눈이라도 올라치면 눈이 나무에 쌓여 나무가 늘어지며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으로 여겨져 울며 겨자 먹기로 나무 자르는 회사를 섭외하여 하청을 주었다. 견적을 보는 날, 나무 자르는 사람에게 물었다. “What do you think? Should I cut this tree? 이 나무를 자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그러자, 그 사람이 “자르면 안돼요! 이 나무는 소음을 막아주고 [집 앞이 초등 학교라, 아이들 쉬는 시간에 소음이 만만치 않다], 또 코너 집이기 때문에 혹시 자동차가 길에서 집으로 돌진할 때 막아주기도 하고, 더불어 지나가는 사람들 혹은 자동차로부터 프라이버시도 지켜 주는 나무이기 때문이죠”라고 하였다. 아[OMG!]… 나는 한 가지만 생각하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코너 집마다 똑 같은 자리에 나무가 한 그루씩 다 서 있었다. 내 생각에 쓸모 없다고 생각한 것이, 다시 생각하여 보니 너무 쓸모가 있을 뿐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회개했다. 우리 집을 소음으로, 자동차의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기 위하여 우뚝 서있던 나무를, 나의 좁은 소견으로 쓸모 없다 생각한 것을 말이다. 교회 공동체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 몸에 쓸모 없는 지체가 없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 안에도 어느 누구 하나 쓸모 없는 사람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 아니신가?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귀히 여기고, 또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며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여 주어야 한다. 아, 아직도 너무 부족한 것이 많다. 더 철이 들어, 사소한 것에도 하나님의 뜻으로 좀더 삶을 깊이 볼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야겠다. – 정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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